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도계서원, 노계박인로문학관

경주,일상

by 필무 2023. 5. 5. 15:50

본문

  노계 박인로는 송강정철, 고산윤선도와 같이 조선의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선생은 영천 출신으로 비오는 휴일 가까운 곳에 있는 그의 유적을 찾았다.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영천과 경주 바로 경계 부근,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그가 나고 돌아가신 고향이다.

 

주차를 하고 먼저 묘소 부터 찾아 보았다. 묘소는 가까웠다.

 

묘소 올라가는 길

 

비석이 박인로 선생의 묘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묘앞 상석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묘비 뒷면에는 선생의 일대기가 적혀 있었다.

 

선생묘 바로 뒤에 좀 더 큰 묘가 있어 가 보았더니 상석에 子 仁老라는 글로 보아 선생의 아버지묘 였다.

 

묘앞의 엉겅퀴 꽃

 

박인로 선생의 묘와 뒤의 아버지 박석의 묘

 

도계서원 전경, 우측이 도계서원 이다.

 

도계서원 좌측은 박노계 집판목을 보관 하는 곳인 모양이다. 두 곳 다 문이 잠겨 있었다.

 

도계서원 왼편 화장실쪽에서 바라본 도계서원 내부, 서원 본관 건물만 있는 아주 작은 서원이었다.

 

서원앞 저수지 풍경이 비가와서인지 고즈넉하다.

 

잠겨진 문틈으로 보이는 서원 현판과 강당인 구인당 현판

 

좌측 담장 너머로 본 도계서원

 

도계서원에서 노계문학관으로 내려서면서 본 붓꽃

 

조홍시가(한음 이덕형이 보내온 홍시에 대한 답으로 지은 시조) 시비

 

박인로 선생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32세때 영천의병에 참전하였다.

 

39세때 별시로 치러진 과거에서 무과에 급제 하였다.

 

52세때 수군 조라포(거제도 구조라 지역) 만호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많은 작품활동을 하였다.

 

수군시절 지은 선상탄

 

조라포 만호 박인로

 

박인로의 작품활동

 

박인로의 작품활동

 

노계문학관 전경

 

박인로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와 8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휴일 오후 노계문학관 방문을 마치며

영천 북안 도천리는 노계 박인로 선생의 선조와  후손이 사는 밀양박씨 집성촌이다. 400년전 선생은 지방 낮은 관직만을 지내온 집안에서 태어났고, 선생 이후에도 크게 관직에 나간 이는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선생은 무인과 문인의 삶을 동시에 살았고, 문인으로서도 조선 전기와 후기에 걸쳐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 특별한 스승도 없이 이룩한 그의 문학적 업적은 조선 전후기 가사문학의 변천을 살펴보는 가치로도 큰의의가 있을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